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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주호의 실수, 술 한잔에 흔들린 사랑과 배신의 밤 #8

주호의 실수, 술 한잔에 흔들린 사랑과 배신의 밤 #8

 

 

--- 일주일 후 ---
"민지씨, 도착하셨네요. 이쪽으로 오세요. 새 팀원 소개해 드릴게요."
민지의 매니저 유진이 사무실로 들어서는 그녀를 반갑게 맞이했다. 
지난 일주일간 민지는 주호의 연락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일에만 집중했다. 
그가 보낸 꽃다발도, 사과의 메시지도 차갑게 무시했다.

"새 팀원이요?"

"네, 오늘부터 합류한 남성 인플루언서예요. 패션 쪽으로 유명하신 분인데, 우리 회사와 독점 계약을 맺었어요."

민지는 회의실로 들어섰다. 그곳에는 키 큰 남자가 창가에 서 있었다. 
그는 민지를 보자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드디어 만나게 되네요, 미니민지님. 팬이었어요."

남자는 양손을 내밀며 인사했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그는 세련된 패션 센스와 잘 생긴 외모의 소유자였다. 
특히 그의 밝은 미소와 자신감 넘치는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최현우라고 합니다. SNS에서는 '프레드릭'으로 활동 중이에요."

민지는 그와 악수했다. 프레드릭이라는 이름은 그녀도 알고 있었다. 
남성 패션 인플루언서로 30만 명 이상의 팔로워를 보유한 유명인이었다.

"미니민지님과 협업하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당신의 콘텐츠 스타일 정말 좋아해요."

현우의 칭찬은 과장되지 않고 진심 어린 것 같았다. 민지는 오랜만에 미소를 지었다.
미팅이 끝나고, 현우는 민지에게 다가왔다.

"혹시 시간 되시면 커피 한잔할까요? 앞으로 같이 프로젝트도 진행하게 될 텐데, 서로 알아가면 좋을 것 같아서요."

평소라면 민지는 정중히 거절했겠지만, 오늘은 다른 감정이 들었다. 
어쩌면 주호와의 복잡한 상황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요, 좋아요."

그날 오후, 강남의 한 카페에서 민지와 현우는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눴다. 
현우는 예상과 달리 진지하고 지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단순한 패션 인플루언서가 아니라 경영학 박사 과정을 밟고있고, 
인플루언서 마케팅에 관한 논문을 쓰고 있었다.

"사실 민지씨 같은 인플루언서를 연구 주제로 삼고 있어요. 어떻게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브랜드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요."

"그래서 우리 회사와 계약한 거군요?"

현우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석이조죠. 연구도 하고, 좋아하는 일도 하고."

대화가 이어질수록 민지는 현우에게 편안함을 느꼈다. 그는 주호나 서연처럼 그녀의 과거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저 '미니민지'라는 성공한, 당당한 인플루언서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다음 주에 제가 진행하는 패션 팝업 스토어 오픈 행사가 있는데, 같이 가실래요? 협업 차원에서요."

현우의 제안에 민지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그녀의 핸드폰이 울렸다. 주호였다. 민지는 전화를 무음으로 돌렸다.

"중요한 전화 아니에요?"

"아니에요 나중에 받아도 되는 전화에요."

민지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오랜만에 느껴지는 편안함이었다.

같은 시간, 강남의 한 골목 술집.
주호는 혼자 소주잔을 비우고 있었다. 
열 번째 전화도 받지 않는 민지에 대한 답답함과 불안감이 그를 술집으로 이끌었다. 
그의 눈 앞에는 민지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시계는 자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왜 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을까..."

주호는 소주를 한 잔 더 따랐다.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민지인가 싶어 서둘러 확인했지만, 화면에는 '서연'이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잠시 망설이다가 주호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주호야 나 서연이 지금 어디야? 목소리가 이상한데..."

서연의 목소리는 예상외로 걱정스러웠다.

"아... 그냥 집 근처 술집에서 술 마시고 있어."

"혼자? 민지씨는?"

주호는 한숨을 내쉬었다.

"모르겠어. 연락이 안 돼."

전화기 너머로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내가 지금 갈게. 사실 나도 지금 기분이 별로라서... 혼자 있기 싫어."

주호는 다시 망설였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거절했겠지만, 술기운과 외로움이 그의 판단력을 흐리게 했다.

"그래... 여기 강남역 3번 출구 뒤쪽 '달빛 포차'야."

30분 후, 서연이 술집에 도착했다. 
그녀는 평소와 달리 단정한 청바지에 흰 티셔츠 차림이었다. 
화려한 메이크업도, 세련된 수트도 없었다. 주호는 순간 대학 시절 처음 만났던 서연이 떠올랐다.

"주호야, 술 많이 마셨네."

서연은 주호 앞에 앉아 소주병을 확인했다. 이미 두 병이나 비어 있었다.

"괜찮으면... 같이 마실래?"

서연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주인에게 새 병과 안주를 주문했다. 그리고 주호의 잔에 소주를 따랐다.

"주호야 건배하자. 옛날처럼."

두 사람은 잔을 부딪쳤다. 시간이 흐르면서 술자리는 점점 무거워졌다. 
주호는 민지와의 관계, 그녀가 자신을 피하는 이유, 그리고 자신의 혼란스러운 감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고백들이었다.

"사실... 난 항상 불안했어. 민지가 내 곁을 떠날까 봐. 그녀가 나보다 더 빛나는 사람이 되어가는 걸 볼 때마다..."

서연은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그녀의 눈에는 미묘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주호 너는 예전부터 항상 그랬어. 자신의 가치를 모르고, 다른 사람만 생각하고..."

서연이 주호의 손을 살짝 잡았다. 술에 취한 그는 그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난... 주호 너를 단 한번도 잊은 적 없어. 미국에 가서도... 항상 생각했어."

자정을 넘어, 술집 주인이 마감을 알렸다. 비틀거리는 주호를 서연이 부축했다. 
밤공기가 차가웠지만, 두 사람의 몸은 술기운으로 뜨거웠다.

"주호야 집이 어디야? 내가 데려다 줄게 ."

주호는 웃으며 주소를 알려주었다. 택시를 타고 도착한 그의 아파트. 
서연은 주호를 부축해 엘리베이터에 태웠다. 좁은 공간에서 그들의 숨결이 섞였다.

"고마워... 혼자 들어갈 수 있어."

하지만 현관문 앞에서 주호는 키를 찾느라 허둥대다 결국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서연이 키를 주워 문을 열어주었다.

"들어가서 물 한잔이라도 마시고 자. 이 상태로 그냥 자면 내일 머리 아플거야."

서연은 주호를 안으로 이끌었다. 불을 켜고 주방으로 향했다. 
물을 가져오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주호는 갑자기 묘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그것은 그리움이었을까? 아니면 단순한 외로움?
서연이 물을 들고 돌아와 주호 앞에 섰다. 그들의 시선이 마주쳤다. 
시간이 멈춘 듯했다. 주호는 천천히 손을 뻗어 서연의 뺨을 쓰다듬었다.

"미안해..."

그는 속삭였다. 무엇에 대한 사과인지는 그도 알 수 없었다. 
서연은 대답 대신 그에게 다가와 입술을 겹쳤다. 이성적인 판단은 사라지고, 오직 감각만이 남았다.
아침 햇살이 창문을 통해 흘러들어올 때, 주호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의 옆에는 서연이 누워 있었다. 그 순간 어젯밤의 기억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는 무슨 일을 저지른 것인가?
주호의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는 '민지'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그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주호는 휴대폰을 바라보며 손을 뻗었지만, 갑자기 멈춰섰다. 
어떤 목소리로, 어떤 말로 민지에게 대답할 수 있을까?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결국 그는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거절했다.
침대 위에 주저앉은 주호는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지난 밤의 기억들이 파편처럼 떠올랐다. 
뜨거웠던 순간들, 술에 취해 내뱉었던 말들, 그리고... 민지를 배신한 죄책감.

"주호야..."

서연의 목소리에 주호는 고개를 들었다. 
서연은 그의 셔츠를 걸치고 있었다. 
그녀의 긴 다리와 부드러운 곡선이 셔츠 아래로 드러났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아침 햇살이 그녀의 피부를 황금빛으로 물들였다.

"전화 안 받아?"

"아니... 그냥..."

주호는 말끝을 흐렸다. 
서연은 천천히 다가와 그의 옆에 앉았다. 
그녀의 체온과 향기가 주호를 감쌌다.

"후회하는거 아니지?"

서연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리 조용하고 불안정했다. 
그녀의 눈에는 미묘한 취약함이 어려 있었다. 
주호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블루문에서 처음 만났던 자신감 넘치는 서연이 아닌, 대학 시절 그를 짝사랑하던 소녀 같았다.

"서연아... 난..."

주호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순간, 서연이 그에게 몸을 기대왔다. 
그녀의 팔이 주호의 목을 감쌌다.

"어젯밤만이라도... 나를 원했다고 말해줘."

서연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주호는 혼란스러웠다. 
그는 민지를 사랑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서연의 취약한, 아름다운 모습 앞에서 그는 그녀를 밀어낼 수 없었다.

"서연아... 미안해."

그는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미안하다는 말은 누구를 향한 것이었을까? 
서연은 그의 목을 더 꽉 끌어안았다. 
주호의 손이 자신도 모르게 서연의 등을 감쌌다. 
그것은 연인의 포옹이 아닌, 오래된 상처를 위로하는 듯한 포옹이었다.

"우리... 어떻게 되는 거야?"

서연의 떨리는 목소리에 주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그녀를 안고 있을 뿐이었다. 
창문 밖에서는 새들이 지저귀고, 도시가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휴대폰 화면에는 민지가 남긴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 알림이 반짝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