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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최연소 여팀장이 새로 부임하게 되는데 #6

최연소 여팀장이 새로 부임하게 되는데 #6

 

--- 한 달 후 ---

스카이 본사 27층 글로벌 마케팅팀 사무실. 아침부터 웅성거림이 이어졌다.

"오늘 미국에서 온 새 팀장 온대. MBA 출신에 영어 네이티브 수준이라던데."

"진짜? 여자래? 남자래?"

"예쁘다던데?"

주호는 인사팀 회의실에서 나오다 이런 대화를 들었다. 
그는 시계를 확인했다. 9시 정각, 새 팀장 부임 시간이었다. 복도를 지나던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호야!"

서연이었다. 뉴욕생활로 더욱 세련되어진 외모, 완벽한 슈트 차림, 
그리고 자신감 넘치는 미소. 주호는 순간 멈춰 섰다.

"서... 서연아. 오늘 첫 출근이었구나."

"네! 벌써 소문 들었어? 내가 글로벌 마케팅팀 신입 팀장이야."

주호의 표정이 굳었다. 팀장? 서연은 이제 막 스물일곱의, 스카이 역사상 최연소 여성 팀장이 되어 있었다.

"축하해. 앞으로 잘 부탁해."

형식적인 인사를 건넨 주호는 서둘러 자리를 피하려 했지만, 서연은 그의 팔을 살짝 잡았다.

"주호야, 점심 같이 먹자. 오랜만에 한국 음식이 너무 그리웠거든."

그날부터 서연의 '우연한' 마주침이 늘어났다. 엘리베이터에서, 구내식당에서, 회의실 앞에서. 
마주칠 때마다 그녀는 예전처럼 "주호"라 부르며 친근하게 다가왔다. 
회사 동료들은 둘이 아는 사이임을 금세 알아차렸다.

"주호 과장님, 서연 팀장님이랑 아는 사이세요?"

"어... 그냥 학교 동기야."

"로맨스 있었던 거 아니에요? 팀장님이 과장님 얘기만 나오면 표정이 달라지던데."

소문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스카이 본사의 젊은 인재 두 명, 학창 시절 연인이었다는 이야기까지. 
주호는 이런 소문이 민지에게 들어갈까 점점 불안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주호의 부서에 대형 프로젝트가 들어왔다. 
MZ세대 직원 채용 전략을 위한 인플루언서 마케팅 컨설팅. 그리고 글로벌 마케팅팀과의 협업이 필수였다.

"이번 프로젝트 담당자로 주호 과장을 추천합니다. 그의 여자친구가 유명 인플루언서라 가장 적합할 것 같습니다."

팀원의 말에 회의실 전체가 주호를 바라보았다. 그중에는 서연도 있었다. 그녀의 눈빛이 달라졌다.

"아, 맞아요. 주호 과장님이 적임자인 것 같네요. 여자친구분이... 인플루언서시라고요?"

서연의 말투에 살짝 비꼬는 듯한 뉘앙스가 묻어났다. 
회의가 끝난 후, 서연은 주호의 사무실을 찾아왔다.

"여자친구가 인플루언서라고? 혹시... 세라? 아니, 지금은 민지라고 불러야 하나?"

주호의 얼굴이 굳었다. 서연은 의자에 편안히 앉으며 미소 지었다.

"우연이네. 이번 프로젝트, 우리 같이 하게 되어 기쁘다. 

주호 니 여자친구도 참여하게 되는 거야? 그렇다면... 정말 반갑겠는데."
서연의 미소 뒤에 숨겨진 의도가 느껴졌다. 
그녀는 이 모든 것을 계획한 것일까? 아니면 정말 우연일까? 주호는 핸드폰을 꺼내 민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일찍 퇴근할게. 얘기할 게 있어.'

저녁 7시, 강남의 한적한 와인바. 
주호는 테이블 위에 놓인 와인잔을 손가락으로 빙글빙글 돌리며 민지를 기다렸다. 
평소라면 이 시간에도 회사에 남아 있었겠지만, 오늘만큼은 일찍 나왔다. 
머릿속은 온통 서연과 프로젝트 생각뿐이었다.

"많이 기다렸어?"

민지가 도착했다. 
핑크빛 원피스에 가벼운 트렌치코트를 걸친 그녀는 여전히 SNS 스타다운 센스가 돋보였다. 
주호는 그녀를 보는 순간 마음이 조금 진정되는 느낌이었다.

"아니, 방금 왔어."

두 사람은 와인을 한 잔씩 마시며 가벼운 일상 대화를 나눴다. 
그러나 주호의 표정이 무거운 것을 눈치챈 민지가 먼저 입을 열었다.

"무슨 일 있어? 메시지 받고 좀 걱정됐어."

주호는 깊은 숨을 내쉬었다.

"회사에서 새 프로젝트가 들어왔어. MZ세대 채용을 위한 인플루언서 마케팅... 그래서 내가 담당하게 됐고..."

"와, 축하해! 딱 너한테 맞는 프로젝트네."

민지의 진심 어린 축하에 주호는 더 말하기가 어려워졌다.

"서연이가 그 팀 팀장이야."

민지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와인잔을 들어 올리던 손이 잠시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그녀는 와인을 한 모금 마신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서 프로젝트에 서연이도 같이 참여하는구나."

"응. 더 복잡한 건... 회의에서 내 여자친구가 인플루언서라는 이야기가 나왔고, 
서연이도 그 자리에 있었어. 네 얘기를 은근히 꺼냈어."
주호는 민지의 반응을 살폈다. 불안, 분노, 당황... 어떤 감정이든 예상했지만, 
민지의 표정은 놀라울 정도로 차분했다.

"불편하지 않아? 솔직히 내가 프로젝트 거절할 수도 있어. 다른 사람에게 넘길 수도..."

민지는 미소를 지으며 주호의 손을 꼭 잡았다.

"괜찮아. 정말로."

"정말?"

"응. 지금의 나는 6년 전 그 민지가 아니야. 이제 겁낼 것도, 숨길 것도 없어."

민지의 눈빛에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그녀는 와인잔을 들어 올렸다.

"오히려 좋을지도 몰라. 서연이가 어떤 표정으로 '미니민지'를 마주하게 될지 궁금하네."

민지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묻어났지만, 주호는 그녀의 손이 살짝 떨리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용기를 내는 척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주호는 그녀의 강인함에 다시 한번 감동했다.

"그래도 혹시라도 불편한 상황이 생기면 바로 얘기해."

"걱정 마. 이번엔 달라. 난 이제 나 자신을 지킬 수 있어. 그리고..." 민지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내 팔로워가 서연이보다 10배는 많을 걸? 요즘은 그런 게 힘이야."

두 사람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 뒤에 숨겨진 긴장감을 서로 알면서도, 그들은 와인잔을 부딪치며 다가올 폭풍에 함께 맞서기로 했다.

일주일 후, 스카이 본사 회의실 앞.

민지는 거울 앞에서 머리카락을 정돈하고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오늘 그녀는 '인플루언서 민지'가 아닌, '비즈니스 우먼 민지'로 변신했다. 
테일러드 슈트에 깔끔한 화이트 블라우스, 그리고 단정하게 묶은 포니테일. 
화려한 메이크업 대신 자연스러운 톤으로 전문가다운 이미지를 완성했다.

"민지씨?"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민지는 천천히 돌아섰다. 
복도에 서 있는 서연. 그녀 역시 완벽한 비즈니스 룩으로 무장했지만, 더 화려하고 강렬한 스타일이었다. 
두 여성은 마치 거울을 보듯 서로를 바라보았다.

"서연씨, 오랜만이에요."

민지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블루문의 '세라'도, 서연의 댓글에 불안해하던 '민지'도 아닌,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된 듯했다.

"정말 달라졌네요. 완전히."

서연의 눈이 민지를 위아래로 훑었다. 
그녀의 말투에는 진심과 비꼼이 미묘하게 섞여 있었다.

"서연씨도 변한 것 같아요. 미국 생활이 잘 맞았나 봐요."

두 사람 사이에 보이지 않는 전기가 흘렀다. 
그때 회의실 문이 열리고 주호가 나왔다.

"아, 왔구나. 들어와."

주호의 눈빛이 민지에게 안심을 주었다. 
그는 두 여성 사이의 긴장감을 느꼈지만, 전문가답게 행동했다.

"회의 시작하겠습니다."

스카이 임원들과 마케팅팀, 인사팀이 모인 큰 회의실. 주호는 프로젝트 개요를 설명했고, 
서연은 글로벌 마케팅 전략을 발표했다. 
민지는 인플루언서 마케팅의 중요성과 젊은 인재 유치 방안에 대해 준비한 자료를 천천히 펼쳐나갔다.

"MZ세대는 단순한 기업 이미지가 아닌, 진정성 있는 메시지에 반응합니다."

민지의 발표가 이어질수록 임원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들은 메모를 하기 시작했고,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했다. 
주호는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민지를 바라보았다.

"질문 있습니다."

서연이 손을 들었다. 회의실의 공기가 순간 얼어붙었다.

"민지씨의 콘텐츠는 주로 뷰티, 패션 분야에 집중되어 있는데, 
대기업 채용 마케팅이라는 다소 딱딱한 주제에 어떻게 접근하실 계획인가요? 
혹시... 경험이 부족하진 않을까요?"

서연의 질문은, 겉으로는 전문적이었지만 민지의 배경을 은근히 비하는 뉘앙스가 담겨 있었다. 
회의실이 순간 조용해졌다.
민지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오히려 더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좋은 질문이네요. 제 콘텐츠가 표면적으로는 가볍게 보일 수 있지만, 
저는 팔로워들과 '진정성 있는 소통'이라는 핵심 가치를 추구해왔어요. 
그리고 그건 어떤 분야에서도 통용되는 원칙이죠."

민지는 태블릿을 조작해 화면을 전환했다.

"제가 최근 진행한 교육 NGO 캠페인은 27만 명의 참여를 이끌어냈어요. 
딱딱한 주제일수록 창의적 접근이 필요하고, 그것이 제 강점입니다."

임원들이 감탄하는 소리가 들렸다. 서연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어졌다.
회의가 끝나고, 참석자들이 하나둘 자리를 떠났다. 
민지, 주호, 서연만 남은 회의실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좋은 발표였어요, 민지씨."

서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녀의 눈빛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고마워요. 서연씨의 글로벌 인사이트도 인상적이었어요."

두 여성은 형식적인 미소를 교환했지만, 그 미소 뒤에는 6년 전 블루문에서의 기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주호는 불안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다음 미팅은 다음 주 월요일이에요. 그때 더 구체적인 계획을 논의해요."

서연은 우아하게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 문이 닫히자 민지는 깊게 숨을 내쉬었다.

"괜찮아?"

주호의 물음에 민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생각보다... 괜찮았어."
그것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민지는 서연과 다시 마주하는 순간을 수백 번 상상했지만, 
실제로 그 순간이 왔을 때 그녀는 예상보다 강했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서연의 눈빛에서 민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 프로젝트가 끝날 때까지, 그들의 숨겨진 전쟁은 계속될 것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