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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는 아직도 신분사회가 존재데 왜 그 틀을 깨지 못하는 것인가?

인도 하면 어떤게 떠오르시나요?인구 많고 빈부격차가 많은 나라라고 생각 드시나요?
인도인이 아직도 신분사회가 없어지지 않은 이유는 힌두교라는 종교 때문인데요 

 

태어나자 마자 자신의 숙명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고.부당하더라도 그 삶을 살아 갑니다.
운명을 거스르지 않는 것이 내재화 되어 있다 할수 있죠.

인도에서 종교란 직업 이상의 의미 를 가진 라이프 스타일 전체를 대변한다 할 수 있습니다.
끊임없이 종교가 요구하는 일정한 행동 양식과 규칙을 준수해야 하는데.

인도에 여행을 갈때나 인도인이 
"만나서 반갑습니다.  당신의 종교는 무엇 입니까?"
"저는 종교가 없습니다."
당신은 근본도 없는 사람이무니까? 라고 무심코 말하면 안됩니다.

그러면 인도인은 상당한 불쾌감을 느낄 것입니다.

인도인들에 있어서 종교는 라이프 스타일이고 직업 이상의 중요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러는데요.

당신의 뿌리가 무엇인지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인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물어 본 것이기 때문에.

유교를 믿는다고 말하세요 

유교가 머냐고 물어 본다면 유교는 어른들을 공경하고 부모를 잘 섬기는.
코리안 종교라고 하시면 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k7E06NRRP4

본 영상에서는 힌두교에 반하는 사상을 가진 종교가 두번 생겨 나게 되는데 
왜 힌두교가 뿌리 깊게 인도인에게 내려져있는지 알아 봅시다.

 

# 인더스 문명 몰락, 아리아인 침입으로 인해 힌두교 탄생.

인도역사 최초 발원지는 인더스 강 주변에서 발생한 인더스 문명이다.기원전 3000년 에서 2500년경에

발생한 것으로 추정 되는데.

유적으로 발굴된 '모헨조다로' 도시는 오늘날과 같은 미리 계획 하여 도시를 만들고 그곳에 

인구들이 이동한 계획도시 였다는 것을 알수 있다.

총면적은 3백만 헥타르로 우리나라 여의도와 비슷한 크기로 각 위치 마다 각각 역할들이 있었고 

전체적으로 바둑판 모양으로 되어 있다.

이건 자연이 만들어낸 형태가 아니라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을 알수 있다.

놀라운 사실은 집집마다 구비된 목욕시설과 정원, 상하수도 시설의 흔적을 찾아 볼수 있다는 것인데 

상하수도 시설은 이 당시에 만들어졌다는게 믿기 어려울정도다.

뛰어난 공업기술을 사용 했다고 평가 받는 로마시대에 와서야 상하수도가 본격적으로 만들어 지는데 

그 시기가 기원전 312년경 인걸 비교하면. 2천년넘게 앞서서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이점을 미루어 인도의 조상들은 공업에 관련된 수학적 지식이 뛰어난 것을 추측 해 볼수 있다.

이 민족들은 드라비다인으로 추정 되는데 정확히는 이 민족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수메르, 엘람과 언어적 

유사성이 발견되기 때문에.

신석기 시대에 인더스강 유역에서 농경을 시작하여 인도 아대륙으로 이동하면서 그곳에 이미 살던 원주민과 혼혈하면서 퍼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찬란했던 인더스 문명은 원인을 알수 없는 사건으로 한순간에 사라지게 되고 이시기쯤.

'고귀한', '훌륭한'이란 뜻의 인도 유럽계통의 아리아인들이 기원전 2000년에서 1500년경에 북서쪽으로부터 천천히 인도로 밀려들기 시작하였다.

아리아족은 본래 중앙 아시아와 남러시아의 초원 지대에서 유목 생활을 하다가 인더스 강 상류로 들어와서

원주민을 압박하고,.

다시 동쪽으로 진출하여 기원전 1000년경에는 갠지스강 유역까지 진출하여 오늘날의 인도인이 되었다.
오늘날 인도인들은 드라비다인과 아리아인의 혼혈족인데 이런 역사가 있기 때문에 두 민족간 갈등이 깊다.

이들은 원주민의 문화를 흡수하여 새로운 문화를 이룩하게 되는데 
자연 현상을 신격화한 온갖 신들에게 모은 소망이 이루어지도록 찬미하는 노래를 지었으니,

이것이 브라만교의 경전인 베다이다  이 종교가 발전하여 만들어 진것이 힌두교이다.

고대 인도의 마누 법전에는 각 계층을 나누어 경제, 사회적 역할로 구분 짓기 위해서 카스트라는 제도를 만들었다고 한다.
계급은 브라만과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로 구성된다.
각 계급은 힌두교 창조의 신인 브라마의 신체를 구성하는 것으로 여겨지는데.

머리에서 나왔다는 브라만 계급은 최상위 계층으로 주로 성직자나 교직에 종사하는 지식인들로 구성된다.
그 다음 계급인 크샤트리아는 브라마의 팔로 정치나 치안을 담당하는 계급. 이어서 브라마의 허벅지에서 나온

바이샤는 농업과 상업 끝으로 발에서 나온  수드라는 허드렛일을 맡도록 운명 지어졌다는 것입니다.
이때 생성되었던 계급 제도는 현대에 와서도 인도인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카스트는 크게 네계급으로 분류되지만 실제로는 혈통과 지역, 직업에 따라 3천 개의 카스트로 나뉜다고 한다.

또 그 중에서도 하위 계급은 다시 2만5천 개 계급으로 구성돼 있어서 얼마나 세분화시켜 계급을 나누고 있고  

계급 간에 차별이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각각의 카스트는 저마다 다른 성씨를 쓰고 있으며, 담당하는 일도 다른데, 다른 카스트와의

결혼이나 신분 간의 이동은 거의 불가능하다.

수천 년 전 조상이 어떤 신분으로 태어났느냐에 따라서 자신의 신분이 결정되는 것이다.

 

#힌두교 정의.

 

힌두교에 대해 조금더 자세히 알아보자면'힌두(Hindū)'라는 이름은 산스크리트어로 '거대한 물'을 가리키는

 단어인 '신두(Sindhu)'에서 유래했다.

'거대한 물'이란 '바다'나 '큰 강'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신두'가 가리키는 '큰 강'은 바로 4대 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인 인더스 강이다 

'힌두'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언급된 것은 고대 페르시아인들의 기록인데 이들은 '신두'라는 단어를 페르시아어

단어인. '힌두'라고 불렀다.

기원전 515년 아케메네스 왕조의 샤한샤 다리우스 1세는 인더스 강 유역 일대를 정복하여 그 일대를 '힌두'라고 칭했고,
그 아들인 크세르크세스 1세 대에 '힌두'라는 단어는 기존의 범위인 인더스 강 유역을 넘어 동쪽으로 갠지스 강

유역 일대까지 가리키는 명칭이 되었다. '힌두'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신봉하는 종교라는 뜻이다.

유일신인 브라흐마를 믿지만 다른 신들을 인정하는 다신교를 채택 하고 있다.그레서 불교와 비슷한 윤회사상과

인과응보를 교리에 두고 있는데.

죽으면 다른 생물로 환생하기 때문에 생명체를 아끼며 특히 소 를 숭배한다.차도에 소 떼가 길을 건너고 있으면.

모든 차가 멈춰 서서 소 를 안전하게 지나가기를 기다린다.또한 소를 도축하면 종신형에 처해진다고 하니 우리가 좋아하던 소고기는 꿈도 못 꾼다.

그레서 육류 고기를 먹지 않고 채식주의를 대다수 하고 있다.

 

# 평등 주장 불교 -> 이슬람 침입으로 대체.

 

기원진 6세기 무렵 이런 힌두교에 반대 하는 종교가 탄생하게 되는데.
불교는 브라만교의 카스트 제도로 인한 불평등을 해소 하고자인도의 작은 왕국의 왕자 부타가 깨달음을

통해 세운 종교로 이때 쿠샨 왕조 후원에 힘입어 전성기를 맞게 된다.

그러나 부 가 축적된 승려들은 더이상 탁발하지 않고 불교 전파에 힘쓰기 보다는 어려운 신스크리트어로

 경전을 만들고 학문 연구에만 몰두 하였다.

백성들은 이런 불교를 더 이해하기 어려웠고 상공업 중심지역에서 발전하였던 불교는 로마제국과의 

무역쇠퇴로 타격을 받게 된다.

또한 브라만교는 불교의 명상 수행 법과 열반 개념을 가져왔고 아무리 하찮아 보이는 생명들도 살고자하는 마음은.

우리와 다르지 않고 귀하게 여겨야 한다는 불교의 불살생 도 받아들였다. 또한 부처의 환생이 자신의 신들중 

하나라고 주장하며 점차 확대 해간다.

그러다 7세기 이후 이슬람교가 전파 되면서 불교는 인도에서 완전히 대체 되었다.

더욱이 불교는 관혼상제 같은 가정 의식이나 종교 의례를 전혀 강제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도인들의 

일상을 뿌리내릴 수 없었다.

일반 인으로서 불교를 쉽게 접할 기회 자체가 없었던 셈이다.

 

#이슬람의 침입.

7세기 이후 다신교와 상극인 유일신교 이슬람이 서쪽으로부터 전파되었고, 이들은 무력을 앞세워

 인도를 장악하기 시작 했다.

이 때문에 힌두교 신앙을 유지하는 인도내 소왕국들과 종교전쟁이 빈발하기도 했다.

이러한 경위로 무굴 제국과 같은 이슬람 왕조들이 인도를 지배하기도 했으나, 힌두교는 워낙 인도에 뿌리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중동과는 달리 이슬람이 다수가 되지는 않았다.

전근대 인도 사회는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각 직업과 혈연을 기반으로 하는 카스트에 소속된 혈족 공동체. 즉 쟈티를 기반으로 고도로 분업화된 사회였는데, 힌두교 사회구조를 해체할 경우 무슬림 정복자들 입장에서도.
세금 수입이 감소할뿐더러 사회를 안정적으로 통치하기 힘들었다.

그리하여 이슬람은 힌두교에 이어 인도의 제2의 종교로 남았다.

인도가 영국에서 독립한 후, 종교갈등으로 많은 무슬림들이 인도에서 분리된 파키스탄으로 이주했고.
반대로 파키스탄 일대에 거주하던 힌두교도들은 인도로 이주했다.

이 영향으로 인도내 이슬람의 세력은 위축되었고, 힌두교는 인도인의 절대 다수가 믿는 종교가 되었다.

 

# 영국의 식민지 시대의 마호메트 간디 그리고 유일한 신분 상승을 할 수 있는 IIT공대.

인도의 정신적,정치적 지도자인 마하트마 간디는 1859~1948년 영국 식민지 기간동안 독립운동을 지도하였는데.

1947년 8월 15일 인도는 드디어 영국에서 독립을 했으나, 이슬람교도는 파키스탄으로, 힌두교도는 인도로

 가는 민족분열이 벌어지고 말았다.

당시 종교갈등으로 수만 명이 학살당하자 간디는 이슬람교도와 힌두교도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일하였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모습은 극단적 보수파 힌두교 신도들에게는 이슬람교도를 편드는 것처럼 보였으며,.

결국 1948년 1월 30일에 뉴델리에서 열린 저녁 기도회에 참석했다가 반이슬람 성향의 힌두교 무장 단체

나투람 고드세에게 총을 맞아 암살 당한다.

두번째 힌두교가 고착화 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것이다.
이렇다 보니 수천년간 이어져온 힌두교의 역사는 인도인에게 뿌리깊게 내려져 있다.

인도영화 화이트 타이거에서는 닭장에 갇힌 인도인을 비유 하였는데 옆에 같이 있던 닭이 닭장수에의해

목이 잘려나가는 걸 보더라도.

그 닭장을 빠져나오지 못하는걸 비유하여 그린 장면이 있다.

인도인은 부당하고 힘들더라도 자신의 운명이라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모습을 풍자 한것이다.
이런 계급사회에 벗어 날수 있는 단 한가지 방법은 인도의 최고 명문대학교인 공과 대학교에 입학 하는 길이다.
그레서 경쟁도 치열한데 특히 수학의 문제를 어렵게 출제 하기로 악명이 높다.

인도의 어린 아이들은 19단을 외울 정도로 수학 공부에 열성적이다.
그 덕분에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대다수의 인도계 IT 인재들이 인도 공과대학교 시스템에서 배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