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취미공간

[웹소설] 인생이 달라진 인스타 민지의 새로운 출발 #5

인생이 달라진 인스타 민지의  새로운 출발 #5

 

--- 6년 후 ---

 


"15초 전입니다! 민지님, 준비되셨나요?"

스태프의 외침에 민지는 마지막으로 거울을 확인했다. 
세련된 보브 헤어컷, 자연스러운 톤의 메이크업, 그리고 그녀만의 시그니처인 청량한 미소. 
이제 그녀는 23살, 인스타그램 팔로워 50만의 인플루언서 '미니민지'였다.

"네, 시작하세요!"

강남의 한 고급 카페에서 민지는 새로운 화장품 브랜드의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짧은 시간에 연결자 수가 2만을 넘어섰다. 그녀의 솔직한 리뷰와 따뜻한 인간미가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비결이었다.

"여러분, 오늘 소개해드리는 이 세럼은 정말 제가 3개월 동안 사용해본 결과..."

라이브 방송이 끝나고, 민지는 매니저와 함께 다음 일정을 확인했다. 
3년 전 서울에 도착한 날, 찜질방에서 시작해 편의점, 카페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그녀가 이제는 자신의 팀을 이끄는 사업가가 되어 있었다.

"내일은 오전에 유튜브 촬영, 오후에는 패션 브랜드 미팅이 있어요. 
그리고 저녁에는 대학 과제 마감이니 일찍 끝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렇다. 민지는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방송대학에서 미디어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어렵게 얻은 삶의 균형이었다.

"고마워, 유진아. 그럼 난 먼저 갈게."

민지는 매니저와 헤어지고 강남역 근처 작은 서점으로 향했다. 
그녀만의 비밀 아지트였다. 책 속에서 그녀는 다른 세상을 만났고, 더 넓은 꿈을 키웠다.
서점 2층, 경영 서적 코너에서 민지는 책 한 권을 뽑아들었다. 그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민지야...?"
심장이 멎는 듯했다. 
그 목소리는 6년 동안 잊으려 애썼던, 하지만 결코 잊을 수 없었던 목소리였다. 
민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주호였다. 더 성숙해 보이는 얼굴, in 정장 차림, 그리고 놀란 눈빛.

"주... 주호?"

시간이 멈춘 듯했다. 책장 사이에서 마주친 두 사람. 
주호의 눈에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가득했다.

"정말... 너구나. 완전히 달라져서 처음엔 확신이 안 들었어."

민지는 자신도 모르게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그녀의 왼쪽 귀에는 작은 별 모양 피어싱이 반짝였다. 
주호가 준 팔찌를 녹여 만든 기념품이었다.

"오랜만이네." 민지는 차분하게 말했다. 더 이상 떨리는 열일곱 소녀가 아니었다.

"널 정말 많이 찾았어... 그날 이후로."

주호의 말에 민지는 살짝 미소 지었다. 
그 미소는 더 이상 '세라'의 연기가 아닌, 자신감 넘치는 '미니민지'의 표정이었다.

"나 요즘 SNS에서 꽤 유명해. 검색만 했어도 날 찾았을 텐데."

살짝 비꼬는 듯한 말투에 주호는 어색하게 웃었다.

"인플루언서라... 대단하다. 네가 여기서 이렇게 성공할 줄은..."

말끝을 흐리는 주호를 보며 민지는 문득 궁금해졌다.

"서연이는? 아직도 같이 있어?"

주호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니... 그녀는 졸업하고 미국으로 갔어."

"그래? 너는 지금 뭐해?"

"난 여기 근처에있는 회사 다니고 있어 ..."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6년의 시간은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주호는 여전히 매력적이었지만, 민지의 마음속에서 그는 더 이상 가슴 떨리는 존재가 아니었다.

"저기... 혹시 시간 있으면 커피라도..."

민지의 핸드폰이 울렸다. 인스타그램 메시지 알림이었다. 새로운 브랜드의 협찬 제안.

"미안, 나 이제 가봐야 해. 다음에 시간 되면 연락할게."

민지는 가방에서 명함을 꺼내 주호에게 건넸다. "미니민지 - 콘텐츠 크리에이터 & 미디어 아티스트"라고 적힌 세련된 디자인의 명함.

"그래..." 주호는 어색하게 명함을 받았다. "연락할게."

서점을 나서며 민지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창밖으로 비치는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더 이상 도망치는 소녀가 아닌, 당당하게 자신의 길을 걷는 젊은 여성. 그녀는 미소 지었다. 
인생은 때로 우리를 예상치 못한 곳으로 데려가지만, 중요한 것은 그 길에서 자신을 잃지 않는 것임을 민지는 이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 민지의 마음은 평온하지 않았다. 
주호의 모습이 계속 떠올랐다. 
더 성숙해진 그의 눈빛, 약간 허스키해진 목소리, 정장 차림의 단정한 모습.
민지는 스마트폰으로 검색한 주호의 회사 프로필을 바라보았다. 
대기업 마케팅팀에서 일하고 있는 그는 이제 '젊은 인재'로 불리며 경제지에도 소개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서연이는 정말로 미국 MBA 과정을 밟고 있었다.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그녀의 사진들은 화려한 뉴욕 생활을 자랑하고 있었다.

"바보야..."

민지는 자신에게 속삭였다. 당당하게 주호 앞에서 연기했지만, 사실 그를 보는 순간 심장이 요동쳤다. 
3년의 시간, 수많은 노력으로 쌓아올린 새로운 정체성이 잠시 흔들리는 듯했다. 
그때 열일곱 소녀의 감정이 다시 솟아올랐다.

"민지님, 유니클럽 측에서 계약서를 보내왔어요. 확인해주세요."

매니저 유진의 메시지에 민지는 정신을 차렸다. 
이제 그녀는 '미니민지'였다. 수많은 팬들의 롤모델이자, 자신의 길을 개척해가는 비즈니스우먼. 
과거의 상처에 발목 잡힐 수 없었다.

하지만 그날 밤, 민지의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민지야, 나 주호야. 시간 괜찮아?"

심장이 또다시 뛰기 시작했다. 
성공한 인플루언서의 모든 겉모습 속에서 민지는 여전히 주호 앞에서는 그 열일곱의 소녀였다.

"응, 괜찮아."

그들은 강남의 한 루프탑 바에서 만나기로 했다. 
민지는 옷을 고르며 몇 번이나 마음을 바꿨다. 
너무 꾸미면 티가 날 것 같고, 너무 편하게 입으면 무심한 것처럼 보일 것 같았다. 
결국 그녀는 캐주얼하면서도 세련된 스타일로 결정했다.
도착한 바에서 주호는 이미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그의 옆자리는 비어 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와인 한 병이 놓여 있었다.

"늦진 않았지?"

"아니, 내가 일찍 왔어."

어색한 인사가 오갔다. 
민지는 주호를 바라보았다. 
그날의 불안정한 청년은 이제 자신의 길을 찾은 듯했다.

"스카이에서 일한다고? 대단하네."

"네가 더 대단해. 인플루언서라니... 댓글들 봤어. 다들 너를 정말 좋아하더라."

주호가 웃었다. 같은 웃음이었지만 이제는 더 깊이가 있었다. 
와인 한 잔이 오가고, 두 잔이 오가면서 대화는 점점 편안해졌다.

"서연이... 미국 갔다며?"

"응, MBA 과정 밟고 싶다고 유학갔어."

민지의 심장이 다시 뛰었다. 
그녀는 와인잔을 들어 흔들리는 손을 감추었다.

"왜?"

"그리고 서연이랑 나 사귀는 사이 아니었어 니가 오해 했던것같아서 ..."

주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의 눈에는 후회와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래서 널 찾았어. 하지만 완전히 사라진 것처럼 보였지. 이름을 바꿨나 싶기도 했고..."

민지는 고개를 숙였다. 과거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듯했지만, 
동시에 그 상처 위로 새로운 감정이 자라나고 있었다. 아마도 용서? 혹은 새로운 시작에 대한 희망?

"민지야..."

주호의 목소리가 떨렸다. . 
그는 여전히 그녀를 좋아했다. 모든 상처와 아픔에도 불구하고, 첫사랑의 감정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 다시 시작해볼 수 있을까?"

민지의 눈이 깊어졌다. 
그는 천천히 손을 뻗어 주호의 손을 감쌌다.

그날 밤의 고백으로부터 계절이 한 번 바뀌었다. 
봄바람이 서울의 거리를 채우고, 민지와 주호의 새로운 이야기가 쓰여지기 시작했다.

"오늘 촬영 끝나면 데리러 갈게. 저녁에 맛있는거 먹으러 가자."

출근길, 주호의 메시지에 민지는 미소 지었다. 
이제 그들은 서로의 삶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었다. 
민지의 콘텐츠 촬영장에 커피를 들고 나타나는 주호, 스카이 입사 설명회에서 인플루언서 마케팅을 주제로 강연하는 민지. 
그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빛나면서도, 함께할 때 더 밝게 빛났다.

"인플루언서 여자친구 두니까 어때? 회사에서 인기 많지?"

민지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강남의 한 브런치 카페, 주말 아침을 함께 보내는 그들의 일상이었다.

"직원들이 네 팬이라고 사인해달라는 애들도 있어. 
마케팅팀장이 인플루언서 여자친구 두는 거, 회사 이미지에도 좋대."
주호는 웃으며 민지의 머리카락을 살짝 쓰다듬었다. 
6년 전 블루문에서 처음 만났을 때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 있지만, 그때의 설렘은 여전했다.

"너 요즘 댓글 봤어? 팬들이 날 질투하던데."

"맞아, 내 영상마다 '남자친구 누구냐'고 난리야."

그들은 웃으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과거의 상처는 아직 완전히 아물지 않았지만, 그 상처 위에 새로운 기억들이 쌓여가고 있었다.
가끔 민지는 꿈에서 블루문과 강사장을 마주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두렵지 않았다. 악몽에서 깨어나면 언제나 주호의 따뜻한 품이 그녀를 안아주었으니까.

"서연이한테서 연락 왔어."

어느 날, 주호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민지의 표정이 굳었다.

"연락이라니? 직접?"

"아니..." 주호는 핸드폰을 꺼내 민지에게 보여주었다. "너 인스타그램."

민지는 핸드폰을 받아들고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전날 올린 주호와의 데이트 사진 아래 댓글이 보였다.

@_seo_yeon_official: 와~ 누가 봐도 인기 인플루언서네요! 
세라씨가 아니고 이제 민지씨라고 불러야 하나요? 
🙃 곧 한국에 돌아가는데, 그때 우리 꼭 만나요. 
옛날 이야기도 하고... 블루문 생각나네요. ✨ 주호도 보고싶다!

시간이 멈춘 듯했다. 민지의 손가락이 떨렸다. 
3년 동안 묻어둔 기억들이 한순간에 되살아났다. 
블루문, 강사장, 그리고 서연의 계산된 미소...

"이거 1시간 전에 달린 거야. 방금 봤어."

주호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리는 것 같았다. 민지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왜 갑자기..."

수많은 팔로워가 있는 그녀의 계정에 공개적으로 과거를 암시하는 댓글을 남기다니. 
민지는 즉시 댓글 관리 모드로 전환했다.

"지워?"

주호의 질문에 민지는 잠시 멈칫했다. 지우면 더 의심스러울 수도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괜찮아."

대신 민지는 침착하게 답글을 달았다.

@miniminjee: @_seo_yeon_official 오랜만이네요. 한국에 오면 연락주세요. 반갑게 맞이할게요. 😊

마치 아무렇지 않은 척 표정 관리를 하던 민지였지만, 핸드폰을 내려놓는 순간 그녀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주호가 그 손을 따뜻하게 감쌌다.

"괜찮아. 네가 지금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그건 바꿀 수 없어."

민지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불안감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그날 밤, 민지는 서연의 인스타그램을 샅샅이 살폈다. 
뉴욕의 세련된 거리에서 촬영한 사진들, 미국 유명 브랜드와의 협업 소식, 
그리고 가장 최근 게시물 - '드디어 한국으로 귀국합니다. 스카이 글로벌 마케팅 부서로 발령받았어요!'
민지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주호야... 서연이가 스카이에 취직했대."

침대에 앉아있던 주호의 표정이 굳었다.

"뭐?"

"방금 게시물 올렸어. 글로벌 마케팅 부서래."

둘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주호의 회사, 그것도 마케팅팀장인 주호와 같은 공간에서 일하게 될 서연. 
민지의 머릿속에 과거의 기억들이 스쳐지나갔다. 민지와 강사장의 관계를 무기로 삼았던 서연의 교묘한 술수...

"이건 우연일까? 아니면..."

민지의 목소리가 떨렸다. 주호는 민지를 품에 안았지만, 그의 눈빛에도 불안감이 서려 있었다.

민지는 미소 지었다. 과거의 그림자는 이제 그저 먼 기억일 뿐이었다.

"고마워, 주호야."

"뭐가?"

"날 다시 찾아줘서. 그리고... 내 모든 것을 받아들여줘서."

주호는 민지를 꼭 안았다. 그들은 이제 알고 있었다. 
진정한 사랑은 완벽함이 아니라, 서로의 불완전함을 이해하고 함께 성장해나가는 것임을. 
스무 살의 민지와 스물셋의 주호가 블루문에서 나누었던 어색한 대화는 이제 스물셋의 민지와 스물일곱의 주호 사이의 깊은 신뢰로 변해 있었다.

"민지야."

"응?"

"우리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

민지는 주호의 품 안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이제 알고 있었다. 
인생은 때로 우리에게 큰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그 상처를 통해 우리는 더 강해지고, 더 깊이 사랑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